2010/05/28 16:35
[세상보기]
http://left21.com/article/7943 우리가 양보한다고 저들이 시혜를 베풀까
http://left21.com/article/7957 마르크스주의와 생태
http://left21.com/article/7978 4·19 혁명 50주년 - 한국 최초로 민중이 독재자를 내쫓은 혁명
http://left21.com/article/7983 지배자들의 낙태권 공격 전초전
http://left21.com/article/7934 자본주의는 그나마 나은 대안인가?
http://left21.com/article/7933 민주노동당의 우경 전략 비판
한국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은 이유는 노동자들이 보험료를 적게 내서가 아니라 결정적으로 기업주들의 보험료 부담이 형편없이 낮고, 정부의 국고 보조금은 그보다도 훨씬 적고, 정부가 의료를 시장에 내맡기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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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삶을 황폐화시킬 뿐만 아니라 인구의 도시 집중을 촉진하는데, 이는 인간과 토지(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파괴한다. “폐결핵과 폐병들이 자본의 필요조건”이듯 “토지 고갈과 자연생태계 오염” 역시 자본 축적에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
생산의 목적이 인간이 아니라 자본 축적이기 때문에 자본의 논리와 (자연을 포함한) 인간의 논리가 충돌한다. 인간의 필요 충족이 아니라 이윤 추구가 생산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생산성 증대는 자본의 자기 증식에 따른 것이지 인간 욕망의 증대에 따른 것이 아니다.
http://left21.com/article/7978 4·19 혁명 50주년 - 한국 최초로 민중이 독재자를 내쫓은 혁명
4월 혁명은 독재정권의 폭정에 맞서 자생적으로 발생했다. 정치적 구심 구실을 하는 조직은 없었다. 더구나 자본주의 생산을 멈출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노동자들의 집단적 투쟁이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군부 쿠데타에 취약했다. 이는 노동자 대투쟁이 민주화 운동을 뒷받침한 1987년의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http://left21.com/article/7983 지배자들의 낙태권 공격 전초전
우파들은 태아의 독자생존력을 과장하지만, 태아가 여성의 자궁 밖에서 생존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태어나서도 여성의 양육에 의존해야만 한다. 따라서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여성의 판단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http://left21.com/article/7934 자본주의는 그나마 나은 대안인가?
1백60년 전에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번져갈 무렵,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겨우 1백 년도 못 되는 기간에 과거의 모든 세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거대한 생산력을 창출해 냈다” 하고 인정했다.
그런데 이런 생산 혁신은 자본가들의 냉혹한 이윤 추구 과정에서 나왔다. 이제 생산은 사람들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가들이 이윤을 얻을 수 있느냐에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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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 시기에 자본가들은 노동자 해고, 임금 삭감, 복지 축소 등으로 고통을 전가하며 이윤율을 회복하려 한다.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고 직장에 남은 노동자들은 더 장시간 일해야 한다.
http://left21.com/article/7933 민주노동당의 우경 전략 비판
물론 한나라당을 패퇴시키고 싶어 ‘한나라당 빼고 누구든 괜찮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그리고 선거 논리상 한나라당을 꺾으려면 (그것이 설령 민주당 후보일지라도) 당선 가능한 후보에 투표해야 한다. 얼마나 절박하고 절망적이면 그렇겠는가. 그런 심정으로 자본가 야당에게 투표하는 노동자들을 우리는 이해한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투표가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 투쟁이다. 좌파는 결정적이지 않은 투표 문제 때문에 노동계급이 분열하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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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자기 힘에 대한 근거 없는 과대평가는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지금 민주당이 민주노동당에 끌려오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의 옷자락에 매달리고 있다. 이것을 두고 어떻게 “진보진영의 독자성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